"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야만 한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소감이다. 60여 년간 영화를 찍어 온 이 노장 감독이 여전히 '희망'과 '연대' '함께 사는 미래'를 꿈꾸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난은 너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켄 로치 감독은 가난이란 이름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세상의, 우리의 '잔인함'과 결부시킨다.
주인공 다니엘(데이브 존스 분)은 일평생 목공이자 공예가로서 성실히 살아온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심장병이 악화하면서 실직하게 되고, 의사는 당분간 일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실직 급여를 상의하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는 지속적으로 구직 활동을 해야만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누차 강조한다. 그런 관공서에서 어린 남매를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가 문제를 일으킨다. 관공서로 대표되는 신자유의적 관료사회는 다니엘과 케이티의 상황에 대해 도움을 주기는커녕 ‘인간 없는 규칙’을 얘기할 뿐이다.
그렇게 구직과 치료에 힘쓰는 다니엘의 일상에 케이티와 그의 어린 남매들이 찾아 든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싶은 싱글맘 케이티 역시 지금 막다른 벼랑에 몰려 있다. 부모가 각자 다른 아이들의 아빠들에게 도움을 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니엘은 케이티 가족에게 소소한 도움을 주고, 그렇게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된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에서 실직자이거나 혁명가이거나 관계없이 주인공은 우리네 이웃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하고, 친구가 필요하며,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다. 다만, 배경이 유럽이나 영국의 어느 도시일 뿐이다.
영화에서 케이티는 생존을 위해 여성용품을 훔치는 일까지 하게 되고,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던 상황에서 매춘을 제안받는다. 몇 백 파운드가 아쉬워 결국 실행하게 된다. 이 상황을 알아챈 다니엘은 매춘 현장을 찾아 눈물로 그만둘 것을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빈곤에 내몰린 케이티의 냉대와 거절뿐이다.
결국 병이 난 다니엘에게 찾아 온 케이티의 어린 딸은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아저씨, 우리 친구 아니었어요?"라며 간절하게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어떤 거창한 연대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가 결국 다니엘의 마음을 여는 이 장면은 꽤나 찡한 울림을 준다.
빈곤에 내몰린 아이는 그저 엄마에게 "구멍 난 신발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를 위해 또 엄마는 매춘에 나선다. 그걸 말리는 다니엘을 케이티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 빵과 우유를 사기 위해서.
켄 로치 감독은 “우리는 뭘 했는가” 라고 묻고 있다. 송파 세 모녀는 왜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으며,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젊은이는 왜 희생당해야 했을까.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보며 부지불식간에 제기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라는 다니엘의 대사야말로 켄 로치 감독이 지켜내고자 하는 '인간의 존엄'이자 '인권'의 다른 말이다. 영화 후반부에 다니엘이 "내가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시민들에게 외칠 때, 그의 갑작스런 인정투쟁에 길거리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 줄 때, 그래서 더욱 뜨거운 감정이 차오를 수도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이 같은 인간적인 공감과 연민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연대라고 호소하고 있다.
글쓴이 하성태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시민기자입니다.